운전 경력이 꽤 됐다고 자신했는데,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 핸들을 잡은 날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분명 "운전"이라는 행위는 똑같은데, 디테일이 다르니까 머릿속에서 계속 "어? 이게 아니지" 하는 순간들이 생깁니다. 한국 면허로 뉴질랜드에서 운전을 준비하시는 분들, 혹은 여행 와서 렌터카를 빌릴 계획이 있는 분들을 위해 직접 겪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봅니다.
1. 핸들도 반대, 차선도 반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입니다. 뉴질랜드는 좌측 운전 국가입니다. 운전석이 차의 오른쪽에 있고, 도로의 왼쪽 차선으로 달립니다. 깜빡이, 와이퍼 레버 위치까지 한국과 반대라서 머리로는 알고 타는데도 처음 며칠은 몸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경험은 아래 2번에서 풀어보겠습니다.)
2. 비보호 우회전과 무신호 교차로, 양보의 기술
한국에서는 좌회전할 때 마주 오는 직진/우회전 차량에 양보하는 게 익숙합니다. 그런데 좌측 운전인 뉴질랜드에서는 정반대로, 우회전할 때 마주 오는 차에 양보해야 합니다. 게다가 뉴질랜드는 신호 없이 비보호로 우회전해야 하는 교차로가 정말 많습니다. 시골길뿐 아니라 동네 안에서도 신호도 표지판도 없는 작은 교차로를 자주 만나는데, 이럴 때 기본 규칙은 우측에서 오는 차에게 양보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뉴질랜드 오기 전에 자카르타에서 거주하면서 운전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거기서도 한국과 다르게 좌측 운전에 레버 위치까지 반대라서 한참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뉴질랜드에 와서는 오랜만에 운전대를 다시 잡은 거라 안 그래도 긴장한 상태였는데, 레버까지 반대인 걸 다시 마주하니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한 번은 깜빡이를 켜려고 손을 뻗었는데 와이퍼가 작동하는 바람에 깜짝 놀란 적도 있습니다.
거기에 비보호 우회전까지 겹치니 처음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른쪽에서 차가 쌩쌩 달려오는데 신호도 없이 어떻게 우회전을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운전을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뉴질랜드 운전자들이 양보를 정말 잘 해주는 편이었습니다. 비보호 교차로에서도 서로 눈치껏 속도를 줄이고 양보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 있어서, 지금까지는 큰 문제 없이 운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무신호 교차로에서 속도를 확 줄이고 좌우를 두 번씩 살피는 습관을 들이는 게 마음 편합니다.
3. 라운드어바웃 천국
뉴질랜드는 신호등보다 라운드어바웃(로터리)이 훨씬 많습니다. 작은 동네 교차로부터 고속도로 진입로까지, 정말 곳곳에 있습니다.
기본 규칙은 단순합니다. 로터리에 진입할 때는 이미 로터리 안에서 돌고 있는 차, 즉 우측에서 오는 차에 무조건 양보합니다. 한국에는 로터리 구조 자체가 흔하지 않아서, 처음엔 "내가 먼저 가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를 매번 계산해야 했습니다. 며칠 지나면 자연스럽게 몸에 익긴 하는데, 적응 전까지는 로터리 앞에서 살짝 긴장하게 됩니다.
4. 차 한 대만 지나가는 다리, '원 레인 브릿지'

시골 도로를 달리다 보면 갑자기 다리가 좁아지면서 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구간이 나옵니다. 이른바 'One-Lane Bridge'입니다. 다리 앞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화살표로 어느 방향 차량이 우선인지 표시돼 있습니다.
처음 마주쳤을 때는 "이게 뭐지, 공사 중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뉴질랜드 시골 도로에서는 꽤 흔한 구조입니다. 표지판을 잘 보고, 우선권이 없는 쪽이면 다리 앞에서 멈춰서 기다려야 합니다.
이걸 제대로 몰랐다가 식겁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을 태우고 코로만델로 가던 길, 처음으로 One-Lane Bridge를 만났습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달리고 있었는데, 옆에 탄 친구가 갑자기 질겁하면서 "멈춰!"라고 외쳤고, 저도 놀라서 급하게 차를 세웠습니다. 알고 보니 그게 바로 One-Lane Bridge였습니다.
그때 친구가 알려준 게, 단순히 "건너편에 차가 안 보이니까 건너도 되겠다"가 아니라, 다리 앞에 세워진 표지판에 표시된 우선 방향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표지판은 보통 두 가지 모양으로 나뉩니다. 내 차 쪽 방향에 우선권이 있다는 표시(굵고 큰 화살표 + 'P' 표시)와, 반대 방향에 우선권이 있어서 내가 양보해야 한다는 표시(가는 화살표)입니다. 우선권이 있는 쪽이라도 반대편에 이미 다리에 진입한 차가 있다면 당연히 기다려줘야 하고, 우선권이 없는 쪽이면 다리 앞에서 무조건 멈춰서 반대편 차가 다 지나간 뒤에 진입해야 합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무작정 진입했다가는 다리 한가운데서 마주 오는 차와 정면으로 만나는 아찔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걸 그날 제대로 배웠습니다.
5. 경적을 거의 안 울리는 문화
한국에서는 살짝 늦게 출발하거나 끼어드는 차에 가볍게 빵빵거리는 게 일상적인데, 뉴질랜드에서는 경적을 쓰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클락션을 누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한 번은 무의식적으로 살짝 경적을 울렸는데, 옆 차선 운전자가 깜짝 놀라며 쳐다보는 걸 보고 "아, 여기선 이거 진짜 민감한 거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이후로는 경적 쓸 일이 있어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6. 보행자 우선이 철저하게 지켜진다
횡단보도 근처에 사람이 서 있기만 해도 차들이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고 멈춰서 기다려줍니다. 보행자가 길을 건너지 않더라도, "건널 것 같다"는 느낌만 있어도 차들이 양보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한국에서의 운전 습관대로 약간 빠르게 지나가려다가, 뒤늦게 "여긴 그러면 안 되는구나" 싶어서 급하게 멈춘 적도 있습니다. 보행자 우선 문화가 한국보다 훨씬 엄격하게 지켜진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7. 내비게이션 거리만 믿으면 안 된다
지도에서 100km라고 나오면 "한 시간이면 가겠다" 싶은데, 실제로는 구불구불한 2차선 시골길이라 평균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낮습니다. 직선 고속도로가 많은 한국과는 다르게, 뉴질랜드는 산이 많은 나라라 능선이나 계곡을 따라 도로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뉴질랜드 명소로 알려진 코로만델이나 피하 비치에 가보겠다고 운전했던 날이 기억납니다. 지도상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아 보였는데, 막상 가보니 길이 끊임없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코너도 생각보다 훨씬 급하게 굽어 있어서 속도를 거의 내지 못했습니다. 와인딩 로드를 즐기려는 마음으로 출발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진땀을 빼며 핸들에만 집중하게 됐던 기억입니다. 결국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렸고, 그 이후로는 거리만 보고 시간을 가늠하는 습관을 버리게 됐습니다.
처음 장거리 운전을 계획할 때 이걸 모르고 일정을 짰다가, 예상보다 한두 시간씩 늦어진 경험이 여러 번 있습니다. 이제는 거리보다 구글맵이 알려주는 예상 시간을 더 믿게 됐습니다.
8. 주유소는 거의 다 셀프
뉴질랜드 주유소는 대부분 셀프입니다.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펌프(pump)에서 카드로 직접 결제하고 바로 주유하는, 한국에서도 익숙한 셀프 주유 방식입니다. 카드를 꽂고 화면 안내에 따라 금액이나 리터를 입력한 뒤 직접 주유구를 채우면 됩니다.
다른 하나는 조금 더 옛날 방식인데, 일단 펌프 번호를 확인한 뒤 주유소 건물 안에 있는 슈퍼(편의점)로 들어가서 직원에게 기름 종류, 펌프 번호, 그리고 지불하고 싶은 금액을 말하고 먼저 결제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펌프로 돌아와 직접 주유구를 채우는 방식입니다. 처음엔 이 순서가 익숙하지 않아서, 결제부터 해야 하는 줄 모르고 펌프 앞에서 멀뚱히 서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어느 방식이든 직원이 직접 넣어주는 일은 거의 없으니, 처음 방문하는 주유소라면 결제 방식이 어떤 식인지 먼저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결론적으로, 뉴질랜드 운전은 한국 운전 경력이 있다고 해도 처음엔 새롭게 익혀야 할 게 많습니다. 다만 몇 주 정도 적응하면 금방 몸에 익는 것들이라, 너무 겁먹지 않으셔도 됩니다. 특히 라운드어바웃과 비보호 우회전 양보 규칙, One-Lane Bridge의 우선순위 표지판, 그리고 보행자 우선 문화는 의식적으로 신경 쓰면서 운전하시면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하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