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한 봉지가 300달러짜리 폐기 비용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뉴질랜드 입국, 혹은 한국에서 택배로 음식을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습니다. 뉴질랜드에서 물류 업무를 하다 보니 이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MPI, 즉 Ministry for Primary Industries가 왜 이렇게 엄격한지, 직접 겪고 본 것들을 풀어보겠습니다.
뉴질랜드 MPI와 바이오시큐리티, 이게 진짜 뭔지 아십니까
MPI(Ministry for Primary Industries)는 뉴질랜드 1차 산업부입니다. 농업, 낙농업, 수산업, 식품 안전, 산림,그리고 검역까지 아우르는 기관으로, 한국으로 치면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기능이 하나로 합쳐진 형태라고 보면 됩니다.
이 기관이 공항에서 가장 먼저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바로 바이오시큐리티(Biosecurity) 검역 때문입니다.
바이오시큐리티란 외래 해충, 동식물 병원균, 잡초 등이 국경을 넘어 유입되는 것을 막는 생물학적 안전 관리 체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뉴질랜드 생태계를 지키는 국경 방어선입니다.
뉴질랜드는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상, 한 번 외래종이 들어오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MPI 공식 자료에 따르면 뉴질랜드는 매년 수천 건의 바이오시큐리티 위반 사례를 적발하고 있으며, 미신고 물품에는 최대 400뉴질랜드달러의 현장 즉결 과태료(Infringement Fee)가 부과됩니다(출처: 뉴질랜드 MPI 공식 사이트).
입국 시 신고해야 하는 주요 품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선 과일, 채소, 육류, 유제품, 계란 등 자연 유래 음식물 전체
- 씨앗, 흙 묻은 식물, 나뭇가지, 건초, 목재 등 식물성 재료
- 사용한 적 있는 캠핑 장비, 등산화, 낚시 장비 (흙·미생물 오염 가능성)
- 가공식품, 인스턴트 식품, 과자류 등 (반입 가능하나 반드시 신고 필요)
여기서 Declare(신고)란, 입국 카드에 해당 물품이 있다는 사실을 기재하고 검역관에게 심사를 받는 절차를 말합니다. 신고 자체가 금지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저도 두 번째 뉴질랜드 입국 때 인스턴트 라면, 과자, 액젓을 가져왔고, 전부 신고서에 빠짐없이 기재한 덕분에 아무 문제 없이 통과했습니다.
반면, 첫 입국 때는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음에도 검역원 앞에서 주머니를 몇 번이고 뒤집어봤습니다.
기내에서 나눠준 샌드위치를 챙겼다가 햄 때문에 벌금을 맞았다거나, 삶은 달걀을 주머니에 넣고 들어왔다가 걸렸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였습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뉴질랜드 입국 커뮤니티에서 실제로 회자되는 사례들입니다.
직접 보고 겪은 검역 현실, 시스템은 완벽한가
물류 회사에서 일하면서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오는 국제 택배를 꽤 많이 다뤄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검역 실상을 일반 여행객보다 더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게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까 싶었습니다.
레토르트(Retort) 식품, 즉 고온·고압으로 완전 살균 처리된 밀봉 가공식품은 상식적으로 세균이나 해충이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3분 카레나 짜장 파우치 안에 들어있는 돼지고기 성분이 문제가 되어 폐기 비용 300달러가 발생한 사례가 제가 경험한 업무 중에 실제로 있었습니다. 먹태에 딸려 온 청양마요네즈 사은품이 검역 대상이 되어 결국 담당자를 불러 폐기 처리를 해야 했던 경우도 기억납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이처럼 MPI의 검역 기준은 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HACCP)이나 국제 식품 안전 규정과는 별개로 자체적인 바이오시큐리티 기준을 적용합니다. HACCP이란 식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해 요소를 사전에 분석하고 예방하는 식품 안전 관리 시스템입니다. 뉴질랜드는 이보다 더 보수적인 기준으로, 원재료 성분 자체의 국적과 처리 방식을 따집니다.
솔직히 이 시스템이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고서에 적지 않으면 그냥 통과되는 경우도 있고, 검역관 개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도 실무에서 심심찮게 봤습니다.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올 만도 합니다.
뉴질랜드 소비자연구소인 Consumer NZ도 바이오시큐리티 집행의 일관성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습니다(출처: Consumer NZ).
그럼에도 이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뉴질랜드 1차 산업, 특히 낙농 분야의 GDT(Global Dairy Trade) 수출 가격 지수는 뉴질랜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GDT란 뉴질랜드 유제품의 글로벌 경매 지표로, 분유·버터·치즈 등의 국제 시세를 반영하는 기준입니다. 만약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같은 가축 전염병이 단 한 번이라도 유입된다면, 이 지표 자체가 흔들립니다. 청정국이라는 이미지가 무너지면 회복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깐깐한 검역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를 뉴질랜드에서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처음 입국하던 날 느꼈던 "왜 이렇게까지 하나"라는 반응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래야만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뉴질랜드 MPI 검역은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뉴질랜드의 청정 브랜드와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장치입니다. 입국하거나 택배를 받을 계획이 있다면, 무조건 Declare 먼저 하는 것이 벌금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애매하면 신고하고, 신고하면 대부분 통과됩니다. 이것 하나만 기억하셔도 됩니다.
참고: https://www.mpi.govt.nz/about-mpi
https://www.consumer.org.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