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질랜드에 만 31살에 입국을 했습니다. 만 30살에 워홀 비자를 받아두고, 진짜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왔습니다. 뉴질랜드에 있는 동안 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돈도, 영어도 아닌 외로움이었습니다. 외향적인 성격이라 친구를 만들기 위해 입국 2주 만에 바로 하이킹 동호회를 통해 등산을 하러 갔고, 그곳에서 현재까지도 연락하고 가장 가까이 지내는 친구 두 명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이후 International meetup이나 다른 커뮤니티 활동에서는 만날 때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가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누군가는 2명이라도 소중한 친구를 만났으니 다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 한 명은 워크비자를 지원받지 못해 본국으로 돌아갔고, 나머지 한 명은 로컬 친구지만 현재 호주로 이동할 계획이 있어 결국 언제 다시 혼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외로울 틈이 없었지만 뉴질랜드에서는 문득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이 다른 어떤 것보다 힘들었습니다. 특히 차 사고를 두 번 겪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두 번 모두 제가 100% 피해자였던 사고였는데 외국에서 차 사고를 경험하는 것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도 몰라 정말 막막했습니다. 보험 처리,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 이후 대응까지 모든 과정이 낯설었고 그 순간만큼은 부모님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습니다. 뉴질랜드에 온 순간부터 모든 일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그 부담감이 더 크게 느껴졌고 외로움도 더 깊어졌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외향적인 성격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뉴질랜드에 입국한 지 2주 만에 하이킹 동호회에 가입해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가장 가깝게 지내는 친구 두 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곳 생활이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International meetup이나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에 계속 참여했음에도, 만나는 순간은 즐거웠지만 마음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로 이어지기는 어려웠습니다. 누군가는 친구 두 명이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관계도 변수가 많았습니다. 한 명은 워크비자를 받지 못해 본국으로 돌아갔고, 다른 한 명은 로컬 친구이지만 호주로 이동할 계획이 있어 결국 다시 혼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한국에서는 가족과 친구들이 항상 곁에 있었고, 연락만 하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문득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이 훨씬 크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차 사고를 두 번 겪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처음이라 보험 처리나 연락 방법도 몰랐고,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현실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부모님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힘들었던 뉴질랜드 영어였습니다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는 영어에 대한 걱정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International conference에도 참여했고 해외 바이어와 소통하는 업무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키위 특유의 악센트였습니다. 미국식 영어에 익숙했던 저에게 뉴질랜드 영어는 처음에는 거의 다른 언어처럼 느껴졌습니다. 단어를 아는 것과 듣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습니다. 처음 1년은 특히 힘들었고 아무리 영어를 반복해서 들어도 쉽게 적응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지나가는 로컬 아이들의 대화조차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전화 통화는 특히 더 어려워서 전화가 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업무 중에도 다시 물어보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었습니다. 입국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대부분의 키위 영어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나아졌고, 이제는 영어 때문에 위축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결국 현실은 돈이었습니다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는 어느 정도 모아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돈이 줄어드는 구조였습니다. 집을 구하면서 필요한 Bond 비용, 차량 구매 비용, 보험, 생활 초기 정착 비용 등 큰 지출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먼저 발생했습니다. 특히 뉴질랜드는 초기 비용이 한 번에 몰리는 구조라 예상보다 빠르게 통장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계좌 잔액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현실적으로 “내가 잘 선택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뉴질랜드 물가가 비싸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 체감은 훨씬 더 컸습니다. 한국에서의 소비 기준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일을 구했고 수입도 안정적으로 들어오면서 생활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뉴질랜드 생활 1년 반을 돌아보며
이 글을 쓰면서 지난 1년 반을 돌아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웃을 수 있는 순간도 있었고,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저린 순간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버거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해왔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힘도 생겼습니다. 예전에도 힘든 일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때는 그랬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저도 그 과정 속에서 조금 더 단단해졌다고 느낍니다.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결국 언젠가는 꽃이 피는 순간이 옵니다.